ECB “글로벌 유로 시대 개막” 선언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미국 달러화의 신뢰 약화를 유럽의 기회로 규정하며 ‘글로벌 유로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 “현재 일어나는 변화가 글로벌 유로 시대를 열어주고 있으며, 유럽의 운명을 더욱 강력하게 자기 주도로 이끌어갈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경제의 개방성과 다자간 협력이 보호주의와 힘의 경쟁으로 대체되고 있다며 “이 체제를 떠받치는 달러의 지배적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각국 외화준비금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58%로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미국 정책 불확실성이 달러 약세 촉발
라가르드 총재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클수록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여야 하는데, 최근 오히려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례적인 현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는 미국 정책의 불확실성과 신뢰 상실 때문이라는 일부 시장의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규칙한 경제 정책과 연방준비제도(Fed)에 대한 정치적 개입 시도가 달러화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통화정책 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며 정치권의 개입 가능성을 경계했다.

원화 강세 현상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한국에서도 달러 약세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366.5원까지 하락하며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원화 가치는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폭인 2.4%의 상승률을 보였다.
이는 엔화(1.2%), 유로(0.9%), 영국 파운드(0.9%) 등 다른 주요 통화들보다도 큰 상승 폭이다. 달러인덱스는 같은 기간 100.95에서 99.01로 1.9%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환율 협상 가능성이 추가적인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 재정 건전성 우려가 달러 약세 가속화
달러 약세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장기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강등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장기채 20년물 입찰 부진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 법안 추진 등이 달러화 수요를 떨어뜨렸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미국 국채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셀 USA(미국 자산 매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이 공화당 내에서도 찬성 215표 대 반대 214표로 가까스로 하원을 통과한 상황에서 향후 상원 통과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유로화 국제적 위상 강화 전략
ECB는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무역에서 역할 확대와 강력한 군사동맹 등 지정학적 기반 ▲경제개혁과 자본시장 통합 등 경제적 기반 ▲유럽연합(EU)의 정치적 단합 등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루이스 데 귄도스 ECB 부총재는 “유럽이 통합 노력을 강화한다면, 유로화는 장기적으로 달러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으며, 이사벨 슈나벨 집행이사도 “지금은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을 확대할 역사적 기회”라고 언급했다.
달러 약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다각적 영향

수출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원화 강세는 한국의 주력 수출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환율이 1300원대로 하락할 경우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등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중국, 일본 등 경쟁국 대비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경우 달러로 표시되는 매출이 원화로 환산될 때 수익성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북미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판매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입 물가 안정화와 소비자 혜택
반면 원화 강세는 수입 물가 안정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 비용이 감소하면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구매력 향상과 실질소득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수입 농산물, 의류, 전자제품 등의 가격 하락으로 가계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 해외여행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관광업계에는 긍정적 신호가 되고 있다.
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 기회
원화 강세는 한국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인수합병(M&A)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달러로 표시되는 해외 자산의 취득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해외 공장 건설, 기술 기업 인수, 자원 개발 투자 등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금융 시장과 외국인 투자 동향
원화 강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자산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 환율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 위험이 줄어들면서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채권 투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원화 강세로 인한 수입 물가 하락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시켜 금리 인하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국내 경기 부양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 추이

주요 통화 달러 환율 변동 추이

환율 변동이 업종에 미치는 영향

향후 전망과 전문가 분석
전문가 의견
“미국은 약 10년 주기로 구조적 강달러와 약달러 국면이 반복됐는데, 현재 외환시장에는 ‘달러에 대한 신뢰 약화’, ‘환율 정책’, ‘미국 경기 둔화’ 등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발생할 조짐이 있다” –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
“현재와 같은 정치·통상 압력이 확대되면 달러당 원화값을 1300원 초반까지도 열어둘 수 있다” – 오재영 KB증권 연구원
향후 전망
전문가들은 미국의 감세법안 추진 상황과 7월 만료 예정인 상호 관세 유예 등 변수가 여전한 만큼 큰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변화가 환율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