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숨기고 있는 ’28조엔 폭탄’의 진실

사상 처음 100% 충당금 적립…그들이 준비하는 것은?

일본은행(BOJ)이 2024년 회계연도에 채권 거래 손실에 대한 충당금을 사상 처음으로 10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2018년 95%를 기록한 이후 최고치로, 통상 50% 수준을 유지해온 관례를 깨뜨린 파격적 결정이다. 2025년 6월 현재, 일본은행이 보유한 채권 규모는 약 581조 엔(한화 약 6,000조 원)에 달한다. 이 같은 극단적 조치는 일본은행이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한 ‘예방 차원’이라기에는 너무나 공격적인 대응이다. 현재 보유 채권 규모를 고려할 때, 금리 인상 시 발생할 손실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17년 만의 금리 인상, 그리고 숨겨진 28조엔의 충격

BOJ는 2025년 1월 기준금리를 0.25%에서 0.5%로 인상했으며, 이는 17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금리 인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이자 지급액은 1조2500억 엔으로 전년 대비 6배 이상 급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BOJ의 보유 국채 평가손실은 28조6000억 엔(약 198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8조엔이라는 천문학적 손실 규모는 일본 GDP의 5%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손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크다. 일본은행이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도 동시에 최대한의 충당금을 쌓는 것은 앞으로 더 큰 충격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의 서막,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위기

일본의 부채는 GDP 대비 2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국내 금융기관들이 국채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금리 상승으로 이들 기관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해외 자산 매도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 40년물 국채 입찰이 부진하고, 10년물 금리가 1.5%, 30년물이 3%까지 상승했다. 이번 충당금 인상은 일본의 국채 매입 축소와 금리 인상을 의미하며, 이는 곧 글로벌 유동성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은 저금리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의 원천이었으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외국에 나가 있던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청산 압박을 받으며, 일본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도 빠르게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2031년까지의 암울한 시나리오, 2조엔 적자 폭탄

BOJ 자체 분석에 따르면, 단기 금리가 2%까지 상승하고 장단기 금리차가 0.25%포인트로 축소되는 시나리오에서 2025-2026년 순이익이 사라지고, 2027-2028년에는 최대 2조엔의 순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31년경에야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은행이 향후 6-7년간 지속될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7-2028년 2조엔 적자 전망은 일본은행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엔화 절상의 숨겨진 위험, 부채 폭탄의 점화

엔화가 절상되면 해외에서 엔화로 빚을 진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20~25%까지 증가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손실이 발생하면 엔화 약세와 국채 매도세가 심화되고, 이는 화폐 발행으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엔화 절상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일본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에 시달렸으나, 최근 정부 지출 확대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3~2024년 증시가 크게 올랐으나, 2025년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로 추가 상승이 제한되고 있다.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국채 시장의 새로운 위기

미국은 일본의 저금리 덕분에 2년간 유동성 공급을 받아 경기를 유지했으나, 일본의 금리 인상과 자금 회수로 미국 국채 시장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재정적자 확대, 국채 발행 증가, 트럼프 감세안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으며, 중국도 미국 국채를 순매도하고 있다.

추론: 일본 자금의 이탈과 중국의 국채 순매도가 겹치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국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새로운 불안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의 경고: “중앙은행 신뢰도 위기 올 수 있다”

사실: 라쿠텐 증권 경제연구소의 아타고 노부야스는 “BOJ의 재정을 둘러싼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물가안정 임무 수행 능력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면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BOJ의 누적 충당금은 7조4577억 엔으로 2015년의 3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단순한 재정 건전성을 넘어선다. 중앙은행의 신뢰도는 통화정책의 효과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만약 시장이 BOJ의 재정 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금리 정책의 파급효과가 왜곡될 수 있다. 이는 일본 경제 전체에 예측 불가능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유동성 사이클의 대전환점

글로벌 증시는 유동성(M2) 증가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1998~2001년 닷컴버블 당시 M2 증가율이 높았고, 이후 하락하면서 증시도 무너졌다. 최근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에 있으나, 유동성 축소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자금 회수,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 미국의 긴축 정책 등이 겹치면서 글로벌 유동성 축소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유동성 감소 구간에서는 가치주, 저평가주, 배당주 등 워런 버핏식 투자 방식이 유리할 수 있다. 반대로 M2가 증가하는 구간에서는 성장주, 위험자산 투자에 유리하다.

2025년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의 기로에 선 일본

시장 전문가들은 BOJ가 6개월마다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해 2026년 초 기준금리가 1%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버나이트 인덱스 스와프 시장에서는 5월까지 금리 인상 확률을 20%로 반영하고 있으며, 기준금리가 0.75% 이상으로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BOJ의 100% 충당금 적립은 시장에 대한 일종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도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시장이 이를 ‘위기 대응’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 금리 정책 타임라인

  •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
  • 2024년 7월: 기준금리 0.1%로 인상, 테이퍼링 계획 발표
  • 2025년 1월: 기준금리 0.5%로 추가 인상 (17년 만에 최고)
  • 2025년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 전망
  • 2026년 초: 기준금리 1% 도달 예상

전문가 분석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안전장치 구축이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올 충격의 규모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글로벌 유동성 공급원의 변화, 엔화 절상 압력, 미국·중국 등 주요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시그널이다.”


향후 전망

투자자들은 유동성 사이클과 각국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포트폴리오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일본의 금리 인상과 유동성 회수는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단기적 변동성뿐 아니라 중장기적 구조 변화에 대비한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