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진통 끝에 광물 협정을 타결하면서 약 25억년간 잠들어있던 자원의 보고인 ‘우크라이나 순상지'(Ukrainian Shield)가 결국 미국에 접근을 허용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땅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이 지형은 25억년 전에 형성된 광물질 바위 지형으로, 그동안 여러차례 산 형성, 마그마의 형성과 이동 등의 지질 변화를 겪어왔다. 이러한 지질 작용은 리튬, 흑연, 망간, 티타늄, 희토류 등 여러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형성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세계 168개국의 원자재 생산 현황을 조사하는 기관인 ‘월드 마이닝 데이터’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40위 광물 생산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망간과 흑연 생산량은 각각 세계 8위와 14위 수준이며, 티타늄 역시 대량으로 채굴되어 세계 11위 생산국으로 꼽힌다.
이들 광물은 현대 산업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전략적 핵심 광물로 분류된다. 전기자동차,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 등을 생산하는 데는 모두 리튬, 코발트, 희토류가 필요하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광물 협정이 이러한 핵심 광물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수요 증가와 가격 변동성, 공급망 취약성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도 핵심 광물이 다량 매장돼 있지만 환경 규제와 높은 인건비 등으로 지금까지 채굴과 정제를 해외에 의존해왔다. 이로 인해 핵심 광물 생산과 가공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아져왔다. 이번 광물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핵심 광물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미국은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미국 재무부는 2025년 4월 30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미국-우크라이나 재건 투자 기금 설립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아직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이 협정이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의 희소 자원을 양국이 공동 개발하고 의결권을 반반씩 나눠 갖는 기금을 만들어 그 일부를 우크라이나 재건에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미국의 군사 원조를 투자기금 기여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광물 개발을 통해 미국의 군사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양국이 현금으로 출연할 공동 투자 기금은 미국이 통제하며, 기금으로 이전된 수익에 대해서는 미국에 우선권이 부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인정하길 꺼리던 태도에서 벗어나, 이번 발표문에서는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이라는 표현을 명확히 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번 협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적으로 자유롭고 번영하는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평화 프로세스에 전념하고 있음을 러시아에 분명히 알리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은 또한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물자를 공급한 어떤 국가나 사람도 우크라이나 재건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안전 보장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하며 협정이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계기로 바티칸에서 15분간 단독 회동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종전 협상을 압박하는 등 태도 변화를 보였다.
AF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 협정 체결 직후 뉴스채널 뉴스네이션이 개최한 타운홀 행사에서 광물협정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억제’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각료 회의에서 “미국이 현장에 있으면 많은 나쁜 행위자들이 이 나라에, 특히 우리가 채굴을 하는 지역에 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면서 광물협정과 군사지원을 연계하려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이 본격화할 수 있을지를 놓고는 여전히 푸틴 대통령의 입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점령한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자국 영토로 공식 선언한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2022년 9월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에 합병한 우크라이나내 4개 점령지(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완전 철수해야 휴전에 합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의 약 18%에 해당한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당국자들은 평화합의를 받아들이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완전 항복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 모스크바를 찾은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의 ‘현재 전선의 동결’ 제안을 거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미 의회에서도 정책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상원 내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의원 주도로 고강도 대러 제재 법안이 초당적 지지 속에 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러시아가 휴전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구매하는 국가에 ‘500% 관세’를 매기는 내용 등이 담겼다.
윌리엄 테일러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협정에 대해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매우 복잡한 협상에서 긴밀히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첫 신호”라고 평가했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도 “평등하고, 이익이 되는 좋은 합의”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하이디 크레보-레디커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윈-윈’ 협정을 맺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쟁취할 지질적 부분에 큰 이해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등 광물·에너지 자원에 지니게 될 지분이 늘면서 개입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안보 지원과 관련한 명시적 보장이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하면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 협정이 트럼프로 하여금 이 나라(우크라이나)를 ‘돈줄’ 혹은 푸틴과의 관계개선을 막는 장애물 이상의 무언가로 보도록 만들길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협정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국면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부 해소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에 1만2천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한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는 등 러시아-북한 간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은 종전 협상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협정은 단순한 자원 개발을 넘어 지정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미국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한편, 우크라이나는 재건을 위한 안정적인 자금 조달과 안보 협력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알렉산더 모첸코, 키예프 국립대학교 지정학 연구소장
“우크라이나의 순상지는 전 세계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광물들의 보고입니다. 특히 망간과 흑연은 배터리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이번 협정으로 미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주요 광물 공급국으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제니퍼 린드, 미국 에너지 정보국(EIA) 선임 분석가
이번 미국-우크라이나 광물 협정은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광물 공급망 재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와 배터리 소재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이 협정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적 관여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푸틴 대통령의 협상 태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지위 문제가 여전히 최대 난관으로 남아있어, 단기간 내 종전 협상의 극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경우,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과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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